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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공부/특수교육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시대별 변화

by 자스민차향기조아 2020. 2. 19.

시대별 장애인 인식 변화

장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다. 과거에도 장애인은 존재했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장애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전에는 '독질자', '폐질자', '병신', '불구자'였다. 용어가 변하는 것처럼 각 시대마다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태도도 변화해 왔다

1. 고대~통일신라

장애인에 대한 시책이나 교육 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나, 삼국사기와 예기에 신라 유리왕 때에 홀아비, 홀어미, 고아, 아들 없는 이, 늙은이, 병든이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부양하게 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에서 일정의 식료를 지급하고, 재예(才藝)와 기술에 상응하는 직업을 주어 그에 따르는 보수를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2. 고려시대

장애인 정책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산 속에 버려지거나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시각장애인만큼은 상서로이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주로 점을 치는 점쟁이 노릇을 담당했던 듯 하다. 다만 고려는 점을 치는 일이 복업 또는 복술이라고 하여 꽤 발전된 형태를 갖춘 듯 보이는데, 과거제도에 역학, 음양학 등을 포함시켜서 복인을 선발했다는 기록, 태복감(후에 서운관으로 개칭)을 설치해 점복 행정을 관장하게 했다. 태복감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중 일부는 자섬부사(5)와 시위호군(4)의 벼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충렬왕 6(1280)의 기록에는 취맹승도우(聚盲僧禱雨)라고 하여, '맹승'이라는 계급의 시각장애인들이 길흉을 점치거나 주술을 행하고, 왕명에 의해 기우제를 주관했다고 전해진다.

3. 조선시대

태조 때 명통시라는 시각장애인 단체가 있었고, 여기에서 시각장애인들은 나라를 축원하는 불경을 읽거나 기우제를 지내거나, 일식, 월식, 질병 치료 행사 등에 동원되는 등의 임무를 담당했다. 관현맹인(管絃盲人) 제도가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이 여자들만 있던 구중궁궐에서 관현합주나 가무반주를 담당하기도 했다세종 때에는 고려 때부터 있어왔던 서운관(관상감)에서 2년 과정으로 천문, 음양햑, 사주 등을 교육하여 시각장애인 역술가를 양성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각종 부역이나 잡역을 면제해주고, 시정(오늘날의 사회복무요원 같은 군면제자)을 붙여주어 돕도록 했으며, 가족의 역모에 의한 연좌제에서 제외시키거나, 죄를 저질렀을 때 형벌을 경감시켜주는 등의 지원책이 있었다. 세조는 활인서를 통해 언어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활동보조인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효종 때에는 시각장애인 역술가의 조직인 맹청을 설립했는데, 영·정조 시대에 회원이 서울에만 약 900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정조는 자력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체장애인 및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술과 그물 직조 등 일종의 직업 교육과 알선을 통해 자립을 지원했고,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장애인의 자활대책을 모색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09년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홀(Hall, R. S.)에 의해 평양맹아학교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특수교육이 처음 시작되었다. 1913년 제생원 맹아부가 설립되어 보통교육과 생활에 필요한 기능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직업교육으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점자, 침술, 안마, 수화 등을 교육했다. 제생원 졸업생이자 교사였던 박두성에 의해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1935년에는 평양에 광명맹아학교가 설립되었고, 1938년에는 원산맹학교, 함흥맹학교, 경남맹아학교가 각각 설립되어 제생원의 교육과정에 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화가 김준근의 풍속도에 실린 시각장애인의 모습

4. 1960년대

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가 전혀 없는 암흑기였다. 장애인을 '불구자'라고 부르던 시절이다.  1966년 한국소아마비아동 특수보육협회가 설립되고, 1967년 소아마비 어린이날을 제정함으로써 장애아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주목시켰다. 그러나 성한 사람이 돌보자 소아마비 어린이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불쌍한 사람에 대하여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정책에 대해서만 용인하는 수준이었다.

5. 1970년대

장애 인식의 맹아적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장애라는 이유로 대학 입시에 떨어진 장애인의 부모들과 장애인단체가 대학 입학 제한 조치에 대한 항의 궐기대회를 열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입학 제한 조치가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당사자들에게는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겠지만 사실 이러한 구제 조치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아니었다. 국가 통수권자의 자비로운 인도적 성품을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으며,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불과했다.

6. 1980년대

UN은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선포했다. 1982년에는 '세계 장애인의 해 행동계획'을 채택하고 1983년부터 1992년까지 10년간을 '세계장애인10년'으로 선언했다. 전세계적으로 장애 인권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는 분위기 속에서 88 서울올림픽에 이어지는 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장애 인식에 큰 변화를 겪게 됐다. 장애인에 대한 보편적인 인권을 요구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장애인의 존재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시기로, 장애인복지 분야에서는 이 시기를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전환기'라고 부른다. 1977년 12월 31일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이 1979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고, 1994년 전면 개정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무상교육, 의무교육 및 차별금지 등을 명문화했다.

7. 1990년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기점으로 장애인종합대책과 복지 전반에 대한 제도적인 기초가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곰두리의 행진이라는 장애 관련 단원을 수록하여 교육과정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항목을 삽입했다. SBS에서 '사랑의 징검다리', '장애인을 가족처럼' 등의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의 장애 인식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5년에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이 주축이 되어 장애인 전용 방송이 개설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은 사실 장애인이 아니다', '앵벌이의 배후에 폭력조직이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도는 바람에 호의적으로 전환되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차갑게 변하기도 했던 시기이다.

8. 2000년대 이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는 편의시설과 관련하여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기도 하는 등 객체로 머물러 있던 장애인들이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의 인식도 장애를 동정이 아니라 권리로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장애인복지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고, 매번 '특수교육 5개년 계획'도 수립되어 발표되고 있다. 2002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등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은 변화와 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함께 더불어 사는' 의식 수준까지는 아직 못미치고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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