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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생각

끝까지 점령군 시비로 질척이는 조선일보

by 자스민차향기조아 2021. 7. 7.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극명하게 갈라져서 서로 헐뜯고 싸우기 여념이 없는 나라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입장이 다양하니까 어쩔 수 없는데, 문제는 두 진영의 싸움에 언론이 끊임없이 부채질하는 것이다. 심지어, 종종 난 불에 부채질 정도가 아니라 직접 불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점령군' 논란이 그런 것 같다.

7월 1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첫 행보로 고향인 경북 안동을 찾았다. 안동 시민들, 지지자들, 그냥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 등등 나름 환영인파들에 둘러싸인 채 경북 유교회관과 이육사문학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문제의 '점령군' 발언은 이육사문학관에서 이육사 님의 딸인 이옥비 여사와의 대화 중에 나왔다.

이육사문학관에서 이육사 시인의 딸인 이옥비 여사와 대화중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아무래도 상대가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한 이육사 시인의 가족이다보니 일제와 관련한 언급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는 발언을 하게 됐다.

조선일보는 이걸 놓치지 않고 대서특필하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동맹군인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했다고 해서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썼고, 다른 언론사들이 이걸 따라 쓰면서 야당과 보수측 인사들이 망언이라는 온갖 비난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충격적인 역사 인식이라면서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세력이 되고 미국이 점령군이라면 그동안 대한민국은 일본과 미국의 지배를 당해온 나라였단 말인가"라고 비난했다.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 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이어 받았다"고 비난에 동참했다.

부채질이 아니라 불을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게,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내용들은 다들 역사적인 사실로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고, 그냥 한 대선 예비 후보의 행보일뿐 딱히 별일도 아니었는데 굳이 조선일보에서 꼬투리를 잡으면서 불번지듯 확산되어 별일이 되어버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즉각 입장문을 냈다.

- 해당 발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
-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를 무장해제하고 그 지배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다. 이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증한 역사적 사실
- 주한미군은 정통성 있는 합법 정부인 이승만 정부와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군대다. 일본의 항복에 의해 주둔한 미군정의 군대와는 명백히 다르다
-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친일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 것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해석을 하는 것 
- 마타도어성 공세를 하는 분이 속한 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과거 친일재산 환수법에 대해 전원 반대했던 사실이 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입장문 외에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남에 진주한 미군 모두 점령군이 맞는다
- 북한 진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생각한 일도 없고 그렇게 표현한 바도 없다
- 점령군으로 진주했던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철수했다가 6·25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 같은 미군이라도 시기에 따라 점령군과 주둔군으로서 법적 지위가 다르다는 것은 법학개론만 배워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글에 대해 조선일보는 이재명이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했다가 문제가 되니깐 뒤늦게 소련도 점령군이라 한다면서 비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어떻게든 안 좋게 해석하려면 끝도 없는 법이다. 말 하나 하나를 비틀어 태클 거는 수준이, 역시나 메이저급 언론사라 다르다.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7/05/CCXOYGNJ5FAK5EYNT4TOZHD6DQ/

 

“미군은 점령군” 문제되자, 李 뒤늦게 “소련도 점령군”

 

www.chosun.com

조선일보가 나서서 비난의 포인트를 제시해주니,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유승민 전 의원 외에도 오세훈, 윤희숙, 안철수, 신원식, 원희룡, 이준석 등등 너도나도 나서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당대표 관두고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도 몰랐던 황교안 까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역대급 막말'이라고 보탰다. 더 어이없는 건 정세균, 최문순, 이낙연 같은 사람들까지 경선 때문에 견제하느라고 내부 총질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대통령하고 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홍준표 의원 같이 야당이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면서 까는 나름 합리적인 얘기를 한 사람도 있긴 했다. 

홍준표 의원은 "미군은 주둔군 이였다가 한미상호방위 조약이 체결 되면서 동맹군으로 그 성격이 바뀐다. 그러나 북이나 주사파 운동권들은 아직도 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르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있다"면서 지금의 미군까지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에둘러 깠다.

하지만,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 최초 상륙한 미군은 점령군이 맞다"면서,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했고 당시 우리는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에 맥아더 사령관이나 하지 중장은 일종의 점령군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 대통령 후보로서는 '경솔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어쨌든 이 논란은 조선일보와 그를 따르는 다른 언론과 야당 인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키워진 황당한 해프닝일 뿐,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볼 때 크게 문제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로서는 미군과 소련군 모두 38선을 분기점으로 하여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진격해 들어온 점령군인 것은 분명하다.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이끈 미군도 자신들을 점령군으로 칭했다. 1945년 9월 7일자로 발표한 포고령 1호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에서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면서 '점령군'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태평양방면 미군 육군부대 총사령부 포고 제 1호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천황과 정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일 북위 38도 이남 조선지역을 점령함.

오랫동안 조선인의 노예화된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킬 결정을 고려한 결과,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 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및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조선인이 아는줄로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인 원조와 협력을 구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함.

제1조 -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나의 권한하에 시행한다.

제2조 - 정부의 전 공공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의 정당한 기능과 의무를 실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 모든 사람은 급속히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권한하에 발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부대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안녕을 문란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제4조 - 제군의 재산소유권리는 존중한다. 제군은 내가 명령할 때까지 제군의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라.

제5조 - 군사적 관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가 공식언어이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혹은 일본어 원문 간에 해석 혹은 정의에 관하여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 원문이 적용된다.

제6조 - 새로운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혹은 나의 권한하에서 발출될 것으로 제군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를 지정할 것이다.

1945년 9월 7일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심지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도 미 점령군이라고 말했다.

미국 군인이 점령한 동안에 軍政(군정)이나 民政(민정)에 使役(사역)한 미국 친우들이 우리에게 同情(동정)하며 인내하여 많은 諒解(양해)로 노력해 준 것은 우리가 또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다시 설명코자 하는 바는 미 점령군에 사령장관이요 인도자인 하지 중장에 모든 성공을 致賀(치하)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 분을 용감한 군인일 뿐 아니라 우리 한인들의 참된 친우임을 다시금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새로 건설되는 대한민주국이 세계 모든 나라 중에 우리의 좋은 친구되는 나라 이 많은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전,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

미 군정이 신탁통치를 하면서 일제하에서 관료했던 사람들을 중용한 것도 사실이고, 그로 인해 반민특위 해체 등으로 이어지면서 친일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미군정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을 경계하기 위해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만이 주된 관심사였지, 친일파니 뭐니 하는 것은 미군에게는 전혀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이는 결국 그 이후 꽤 오랜 세월을 대한민국은 친일 인사들이 요직에 앉아 후손까지 대대로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사실상 미군 때문에 친일 청산을 못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세계일보. 1~3공화국 파워엘리트 해방 전 친일 이력 대해부. 2006.8.7.

그 당시 미군을 지칭하는 말이 점령군이었기에 점령군이라 한 것이다. 만일 지금의 주한미군을 두고 점령군이라고 했다거나, 아니면 김원웅 광복회장처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대놓고 말했다면 모를까, 이것이 왜 '반미'라는 둥, 주사파,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일인지, 애초에 이게 비난 거리나 되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주한미군이 점령군이란 말이냐',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하는 거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너무 유치하고 한심해서 뭐라 덧붙일 말도 생각 안 난다.

조선일보는 끝까지 자기들이 지핀 불씨를 살려간다. 심지연 경남대학교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로 보도했는데, 이 기사의 기획 자체가 가관이다. <"점령이라는 단어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고, 더구나 미군을 점령군, 소련을 해방군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 심지연 교수의 말로 초입을 시작하는데, 애초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듯 이런 전제로 시작한다는 게 함정이다.

이후 점령이란 단어는 이러저러한 뜻이며, 일본군 입장에서는 점령군인데 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해방군이며 어쩌구 저쩌구 내용이 펼쳐진다. 정작 심지연 교수의 인터뷰 내용에는 딱히 틀린말은 없다. "미군과 소련군은 일본군을 점령하려 온 것이지 한국민을 점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점령군’과 ‘해방군’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미·소 모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점령’이란 의미에서 ‘점령군’이며,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한민족을 해방했다’는 점에선 동시에 ‘해방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언급들 보면 누가 봐도 너무 맞는 말이다.

https://news.v.daum.net/v/20210706030608468

 

"광복 당시 일본군 34만명, 그들에겐 미군이 점령군"

1945년 광복 당시 남북한에 진주한 미군은 과연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진 역사 논쟁은 당시 미군과 소련군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서 시작됐다.

news.v.daum.net

 

하지만 조선일보 입맛에 맞게 은근슬쩍 내용의 방향이 산으로 향한다. 어떻게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점령군' 발언 논란을 이어가려고 애쓴다. '이재명 지사가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고 말했다'고 하는 기자의 말에 심지연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 세력과 결탁해 벌인 일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유연하게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 남북한의 체제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라고 한다.

사실상 동문서답이지만 독자는 그냥 넘어가기 십상이다. 아마도 이재명이 친일세력과 미군이 합작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말한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재명 지사는 친일세력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고 했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 적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 지사는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고 했다. 미 군정이 일제 치하에서 관료였던 사람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일제 청산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친일세력의 지배 체제가 유지됐다.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런데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선거에 의해 이뤄졌다는 말이 왜 나오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사학자도 아니고 그냥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심지어 초중등 교육을 받은 때가 3-40년전인 사람으로, 이승만 대통령도 미 점령군이라 했고, 오랫동안 '점령군'으로 단어가 사용돼왔으면 보통은 그냥 으레 그런 줄 알고 쓰는 거다. 

무슨 계기가 있어 점령군이란 말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할 일이 있거나, 또는 점령군의 뜻이 어떻고 저쩧고 하는 것을 굳이 논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무의식중에 미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일이다. 이건 비단 이재명 경기도지사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 나를 포함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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