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하는 수선화과 상사화속 여러해살이 식물로서, 개화기에 잎은 하나도 없이 줄기처럼 보이는 길고 곧은 꽃대에 꽃만 덩그러니 달려있는 것이 상사화와 비슷하다. 비늘줄기에서 잎이 돋아났다가 꽃이 달릴 때는 잎이 말라 없어지는 상사화속 식물의 특징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꽃무릇을 상사화나 붉은 상사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같은 상사화 종류이기는 하나, 상사화는 분홍색 꽃이 피는 여름꽃으로서 붉은꽃의 가을꽃이면서, 꽃 모양도 꽤 많이 다르게 생긴 꽃무릇과는 엄연히 다른 꽃이다.
길고 얇은 빨간색의 꽃잎과 기다란 수술 때문에 서양인들은 거미를 떠올렸나보다. 영어이름이 'Red Spider Lily', 즉 '붉은 거미 백합'이다.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it) Herb.'이다.
새빨간 꽃 색깔 때문에 시뻘건 용암이나 지옥불을 연상했었는지, '지옥꽃'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와 걸맞게도 '죽음의 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달걀 모양의 비늘줄기인 석산(石蒜)에 유독성의 알칼로이드가 들어있는데, 이걸 데쳐 먹은 사람들이 병을 앓거나 죽었다고 해서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禮花), 유령화(幽靈花) 같은 별명도 생겼다. 꽃말도 '죽음',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 죽음으로 인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피처럼 붉은색의 꽃도 이미지 형성에 한 몫 했을 것 같다.
일본에서 특히 꽃무릇을 불길한 꽃으로 여겼다. 옛날에 덴메이 대기근이라는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이 때 너무 먹을 게 없어서 독성이 있는 줄 알면서도 너도나도 석산을 캐다가 데쳐 먹었는데, 이 석산마저 바닥나면 그때는 살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생지옥이 펼쳐졌다는 데서 유래했다.
일본식 이름인 '피안화(ひがんばな, 彼岸花)'는 보통 가을의 한 절기인 '피안' 무렵에 피는 꽃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먹으면 죽어서 피안 세계에 닿는다'는 의미라는 설도 있다.
불교에서 '피안'은 원래 열반에 이르른 경지를 뜻하지만, 어쨌든 죽는다는 걸 이렇게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피가 낭자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꽃무릇이 사용된 것은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피가 낭자한 애니메이션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무릇은 서해안과 남부지방의 절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9월에서 10월 경 한가위 즈음 되면 고창의 선운사, 영광 불갑사, 정읍 내장사, 함평 용천사 등의 이름난 꽃무릇 군락지에서는 어김없이 꽃무릇 축제가 개최된다. 일대가 그야말로 불붙은 듯 새빨갛게 물든 장관이 펼쳐진다.
꼭 사찰이 아니더라도 성남시 분당 중앙공원이나 창원 산호공원처럼 도시에 계획적으로 조성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 사찰 주변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는 꽃무릇의 비늘줄기에 있는 녹말의 쓰임새 때문이라고 한다. 석산의 녹말로 풀을 쑤어서 탱화를 그리는 염료에 섞어서 사용하면 염료에 점성때문에 흘러내리지 않고 벽에 잘 칠해지기도 하고, 또 천연 방부제 기능이 있어서 색이 바래지지 않고 오래 가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또, 불경을 제본하거나 고승들의 진영(초상화)을 붙이는 데에도 썼는데, 종이가 좀 쓸지 않게 막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꽃무릇을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져버린 세상에서 화려한 영광의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귀히 여겼다고 한다.
꽃무릇의 꽃대는 작게는 30cm에서 높게는 약 50cm 정도로 자란다. 꽃은 9월~10월 초 긴 꽃대 위에 산형화서로 4-5개의 커다란 꽃이 달려 피는데, 꽃잎의 길이는 약 4cm 정도이고 뒤로 살짝 말려있는 모양새다. 수술 6개에 암술은 1개로 길게 꽃 밖으로 나온다.
상사화속 식물답게 10월말 경 꽃이 시들고 난 뒤에 알뿌리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난다. 잎은 너비 약 1.5cm, 약 30cm 정도의 기다란 모양이며, 짙은 녹색에 광택이 있다. 한 다발씩 뭉쳐서 겨울을 난 후에 이듬해 5월 경 없어지면서 꽃대가 길게 자라난다.
꽃무릇의 다른 이름인 석산은 꽃무릇의 알뿌리의 약재명이다. 석산(石蒜)의 뜻을 풀어보면 돌+마늘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비늘줄기의 모양이 옛사람들이 볼 때에는 꼭 마늘같이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석산에는 리코닌, 가란타민, 세키사닌, 호로리콜린 등 유독성의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독성분이 수용성이라 데치거나 하면 물에 녹아 없어지기는 하지만, 여차 잘못하면 구토와 설사로 고생할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죽을 수도 있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 아닌 이상, 굳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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