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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생각

'위안부 성노예 아닌 매춘'이라는 하버드 대학 교수의 논문

by 자스민차향기조아 2021. 2. 1.

미국 하버드 대학의 로스쿨 교수인 존 마크 램지어(J. Mark Ramseyer)라는 작자가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이라는 논문을 게재해 논란이 되고 있다.

news.v.daum.net/v/20210201184249442

 

"위안부, 성노예 아닌 매춘" 하버드 교수 논문 파문..日 "큰 의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성매매를 강요당한 성노예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군과 계약을 맺고 매춘을 했다는 주장을 펼쳐 1일 현재 논란이 일고 있다. 존 마크 램

news.v.daum.net

이 논문은 3월에 간행될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라는 학술지 65권에 게재될 예정으로, 현재 공개된 초록에는 위안부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하던 매춘업소의 종사자이며,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이론에 충실했던 매춘부였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을 통해 이들이 모두 납치되었거나 강제로 성매매를 한 것이 아니라, 모집업자들에게 속아서 온 피해자가 일부 존재할 뿐이며, 위안소는 당시 일본과 조선에 있었던 공인 매춘업소의 해외 군대 버전이라고도 주장했다.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와 해당 논문

램지어 교수는 사회법학자로 대학원에서 일본 역사를 전공했다. 하버드 대학 홈페이지의 교수 프로필에는 '일본 법학 전공 미쓰비시 교수'라는 직함이 적혀 있어 일본 전범기업의 후원을 받는 교수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일본 인권 선진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1954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한 후 18살이 될 때까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에 능통한 전형적인 친일파 학자다.

그는 도쿄대학에서 장학금도 받았었고,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은 인물로 일본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일본 학자들과 다수의 저서를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2019년 3월, 하버드 로스쿨 교지에 기고한 <Comfort Women and The Professors>(위안부와 교수들)라는 글에서는 '위안부의 존재는 빈약한 가설이며 매춘부라는 증거가 훨씬 더 많으니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소개 화면 캡처

조선의 위안부 모집업자들의 취업사기가 문제라는 램지어의 주장은 일부 맞는 말이기는 하나, 문제는 일본 정부와 군대는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고 오로지 일부 업자들의 잘못이라는 시각이다. 아니나다를까, 이미 일본 산케이 신문은 이 논문을 소개하면서 '일본군이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잘못된 이미지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논문의 의미가 크다'며 '이 논문으로 이미지를 회복하길 기대한다'고 썼다.

논문을 보도한 산케이 신문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102012473i)

램지어 교수는 그의 논문의 근거로 일본의 주장과 자료만을 참조할 뿐, 그외에 일본군 위안소 설치와 운영, 모집 등 전반적인 관리에 일본 정부와 군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다른 증거들과 피해자들의 증언 같은 것들은 싸그리 무시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친일 편향의 글이 만들어질 수밖에.

혹여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처음 계획할 때는 정당한 노무계약 체결이었을 수 있었을런지 몰라도, 역사적인 사실은 일본 정부와 군이 주도하여 모집책을 직접 선정하고 부대 내 위안소를 설치하는 데 깊숙이 개입한 이상 모집업자들의 취업사기 행각을 몰랐다는 저들의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기 가족이 위안부 피해자였어도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를 매춘부로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었다는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피해자들의 증언을 일본의 공문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무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일제가 전쟁에 패망하며 대부분의 자료를 인멸했기 때문에 남은 증거자료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몇몇 자료들이 발견되고 공개되어 왔다.

먼저, 2015년에 중국 흑룡강성 기록보관소에서 공개한 만주국(일제 괴뢰국) 위안부 관련 문서. 여기에는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牧丹江), 쑨양(綏陽), 한충허(寒蔥河) 등지에 군 위안소를 열었다는 사실과 함께, 이 곳에 수십명의 한국인 여성들이 있고, 이들은 한국에서 강제 징용된 2000여 명 중 일부이며, 일본군 전용 식당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 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한 군 위안소의 설립 과정과 날짜, 심지어 계급별로 '이용' 가능한 여성과 시각까지도 적혀 있다고 한다.

흑룡강성 기록보관소가 공개한 위안부 관련 문서 (https://news.v.daum.net/v/20150817155113260)

2013년에는 일본 도쿄 국립 공문서관이 1947년 종전 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군법재판 기록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위안소 4곳으로 연행했고, 여성들은 위안소에 들어갈 때까지도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어떤 말도 듣지 못했으며, 위안소에 들어가서는 협박과 성매매 강요가 있었다는 일본군 중장의 진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도쿄 국립 공문서관이 공개한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문서 (https://news.v.daum.net/v/20131007145008251)

1992년에는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가 일본군의 위안부 개입 사실이 기록된 공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공문서는 1938년 일본군이 중국 북부지역에 주둔한 부대들에 발송한 공문인데, 군이 직접 나서서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 모집업자 선정에 헌병, 경찰이 협력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 1939년 공문서에는 각 부대가 관리하는 위안소의 위치, 위안소 별 위안부 인원 등도 포함되어 있어 일본군의 조직적인 위안부 개입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고, 결국 1993년 위안부를 인정하는 일본의 '고노 담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공개한 일본군 위안부 개입 증거 문서 (https://news.v.daum.net/v/20120910210009475)

일본은 전쟁에 패전하고 난 후 자신들의 만행을 드러낼 많은 증거자료를 인멸했다. 심지어 포로들과 위안부들까지도 서둘러 학살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직까지 남아서 발견된 자료들이 공개되고, 간신히 살아남은 증인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증언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빌어먹을 친일파들이 일본, 미국을 가리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스스럼없이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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