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생활교육의 정의

회복적 생활교육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회복적 정의를, 그리고 회복적 정의를 이야기하려면 응보적 정의를 이야기해야 한다. 응보적 정의는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범죄의 경중을 따져서 형벌을 정하는 현대 사법체계가 대표적인 응보적 정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 또는 '유스티티아'

법에 근거하여 범죄자에게 합법적인 고통을 가하는 응보적 정의는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아주 먼 옛날부터 온갖 형벌과 형틀이 존재해왔고, 오늘날에는 사형제도를 없애냐 마냐 하는 반면, 예전에는 죽음으로써 죄를 갚아야하는 사례도 많았고 그 방법 또한 잔인하고 끔찍했다. 전래동화만 보더라도 인과응보를 주제로 한 응보적 정의의 요소가 굉장히 많다. 나쁜놈들은 끓는 물에 삶아져 죽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피가 터져 죽는다.
응보적 정의는 객관적으로 죄의 정도를 정량화하여 형량을 부여하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일견 공평하고 공정한 정의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에 의해 처벌받는 것까지는 좋으나 과연 피해자의 피해는 회복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잘못한 사람이 벌금을 내거나 교도소에 갇히는 것으로 속이 후련한 면도 있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사람의 피해가 복구 측면에서는 미흡한 경우가 많다.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나날이 더해져만 가는 상황에서 점차 응보적 정의에 입각한 높은 처벌 수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미성숙한 청소년의 한계를 고려하여 인성교육 측면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바르게 수정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활지도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중대한 폭력사태가 나타나기 이전 학생간의 갈등 상황에 대해 학교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공동체의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고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될 수도 있다.
학교는 학생들이 다양한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학급에서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심각한 물리적 폭력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에게 갈등 상황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오히려 갈등을 배움의 기회로 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심각한 학교폭력의 경우에도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 피해를 당한 학생과 그 가족이 당한 고통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 피해를 인지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도록 만드는 회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회복적 정의란, 평화, 용서, 화해에 초점을 두고 학교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갈등을 단순히 잘못 행동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학교 문화를 평화적으로 정착시키도록 하려는 패러다임이다. 응보적 정의가 가해자를 어떻게 얼마나 처벌할까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가 모든 것을 그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우는 데 무게를 둔다. '모든 것'이란 마음의 상처를 비롯해 물질적 피해, 공동체 파괴도 포함한다.
여차하면 회복적 정의를 가해자 봐주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가해자에게 처벌로 죗값을 받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의무와 책임감을 갖게 하려는 데 포인트가 있다. '나는 죗값을 다 받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제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고 말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여러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현실에서도 보게 되는데, 회복적 정의는 처벌이라는 동굴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면서 피해자가 겪는 상처를 직시하고 진심으로 피해자의 아픔을 느끼도록 하여서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당장 이 사회의 모든 범죄에 대하여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사법체계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 대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작은 갈등부터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생활교육을 실시한다면, 비록 오래 걸릴지언정 보다 본질적인 해결에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회복적 정의를 학교에 적용하여 교육하는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벌을 주고 끝나지 않고 학생들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그 속에 참여하여 스스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유도한다. 학교폭력 속에서 울고 있는 피해 학생의 상처 치유를 돕고, 가해 학생에게 진심어린 반성을 통해 재범을 줄이도록 하고 보다 근본적인 관계 회복으로 인해 학교가 더 이상 위협의 공간이 아닌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것이 일견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숱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이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을 다짐하고 더더욱 위험한 관계로 치닫는 일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이렇게 끝없이 맴도는 악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이러한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생활교육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온전히 정착되는 일이 아닐까.

출처: 평화로운 학교를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매뉴얼(강원도양구교육지원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