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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생각

간호법 왜 폐기되었나? 제정 취지, 반대 이유, 쟁점

by 자스민차향기조아 2023. 6. 4.

 

간호법 제정 약속한 적 없다?

지난 5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관직역 간에 과도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로 국민 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간호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이래, 30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투표 끝에 법안이 부결되면서 간호사들의 숙원이었던 간호법 제정이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선 당시 여러 차례 간호법 제정 관련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대한간호협회를 찾아가 간호법 제안을 받아들고 같이 사진도 찍고 이렇게 말했다.

간호협회의 숙원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3당에서 법안 발의를 해서 정부가 그 여러가지 조정을 좀 해서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국회로 오게 되면 이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저희 의원님들께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대통령 선거 후보 윤석열 -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의 간호법 제정 약속

 

원희룡 당시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도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이게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거를 후보께서 직접 약속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간호법 제정 관련하여 윤석열 후보의 약속임을 공언했던 바 있고, 실제로 당시 권성동 의원, 하태경 의원, 홍준표 의원 등을 포함하여 총 46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간호법 발의에 동참했다.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이게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거를 후보께서 직접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간호법에 대해서 우리 두 분 의원님이 계시지만은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여러분들과 의논하면서 한 편으로서 손을 잡고 가겠다라는 말씀을 정책본부장으로서 저희 공식발언입니다. 우리가 한 뜻으로 한 번 간호법과 함께 우리 간호현장의 개선을 위해서 우리 동시적인 관계로 나가기를 약속드리면서 또 기대하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 선대위 정책본부장 원희룡 -

 

원희룡 당시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의 대통령 약속 공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간호법 제정을 공약한 바 없고 처우 개선에 대한 원칙을 선언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대통령비서실장도 '대선 당시 간호법 제정을 공약한 바 없다',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정도만 언급했지 공식적인 약속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간호법 제정을 공약한 적 없다고 발뺌하는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지금 인터넷에 돌고 있는 '윤석열 공약위키'의 캡처 이미지에는 간호법 제정 추진이 명시돼있다. 하지만 공약위키는 공식 공약이 아니라 사전에 국민의 아이디어를 수집하기 위한 플랫폼에 불과하고 여기에 모인 아이디어 중에서 4개만 선별했다고 설명하고 있어서 정식 공약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로 보인다.

윤석열 공약위키 간호 관련 내용 캡처본

사람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약속을 못 지키게 되기도 하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신력이 있어야 할 대선후보와 여당이 무조건 '그런 적 없다'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은 디지털 밈으로 근거가 행적이나 언행이 다 남는 세상인데, 그냥 그 때는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사정상 지금은 여의치 않게 됐다든가 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내뱉은 말을 너무 쉽게 주워담으려는 모습이 너무 자주 보이는 것 같아 아쉽다.

어쨌거나 공식 공약집에는 간호법 추진은 커녕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 관련 내용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애시당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간호사 처우 개선이나 간호법 같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딱히 진심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거철이 될 때마다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호언장담이 얼마나 부질없는 공(空)언인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KBS

 

간호법 제정 취지

대한간호협회가 주장하는 법 제정 취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노인들에 대한 돌봄과 요양의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인데 현재 의료 체계 내에서는 그것들을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간호 서비스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아다.

둘째, 간호사에 대한 처우가 그동안 굉장히 열악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있어 왔는데 이것을 간호법을 따로 제정함으로써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간호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 5대 의료인에 대한 법률이 하나의 의료법으로 묶여있는데, 간호협회는 사실상 의사법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의료법의 모체인 국민의료법이 제정된 1951년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사의 수가 약 7천명이었던 데 비해 간호사는 1천 7백명에 불과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의사가 약 19만명 정도이고 간호사의 수는 두 배가 넘는 46만명으로 전체 의료인 중에서 70%에 육박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처우와 업무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으며,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 의료법이 아니라 독립적인 간호법을 제정하여 간호 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90개국에서는 간호법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그 중 일본, 대만을 비롯한 60개 국가에서는 심지어 의사법, 치과의사법도 별도로 제정되어 있다고 하는 만큼, 우리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낮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열악한 간호사 근무 여건?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관련하여 간호사의 보수 대비 업무 강도면에서 처우가 생각보다 열악하다는 것이 예전부터 공공연한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었고, 장기간의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외국의 경우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수가 5-6명 정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5명 정도인 상황이라고 하고, 1~3년차 초보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무려 60%가 훨씬 넘는 데다, 전체 이직률도 약 15% 정도로 다른 직군에 비해 3배나 높은 상황은 간호사들의 업무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케 한다.

근무형태만 보더라도 벌써 피곤하다. 2019년 기준 연평균 간호사들의 근무시간은 한해 평균 2436시간,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0.6시간이었다. 당시 일반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이 평균 1967시간이었으니 평균보다 많은 시간을 일하는 간호사들이 많다는 얘기다. 여기에 보통 나이트, 데이, 이브닝으로 3교대 근무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근무형태의 특성상 쉬는 날인 오프데이의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진다. 말하자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나이트-오프-데이 근무를 했다고 치면, 나이트 근무하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여 집에서 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는데, 이럴 때 문제는 밤샘근무를 했으니 퇴근한 그 날 집에서 잠을 자면 오프날 낮동안 개인적인 볼일을 보기 힘들다. 낮동안 잠을 푹 자고 나면 저녁이나 밤에는 또 잠이 안 오기도 해서 다음날 아침일찍 출근할 때 지장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오프 날수조차도 들쭉날쭉하고 충분한 휴일을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

간호사 처우 개선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에 간호사들의 야간 간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야근 시간을 8시간으로 규정하고, 야근 인력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을 시행하며, 연속 야근을 3일 이하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고 야간간호료 수가 70% 이상을 야근 직접 인건비로 사용하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의무규정이 아니다보니 실제로 적용이 잘 안 됐다.

큰 규모의 종합병원이 그나마 적용된 곳이 있지만 작은 병원들은 거의 적용하는 곳이 없었고, 그나마 서울은 간호인력 쏠림현상을 우려해 수가 관련 내용을 빼고는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작년 2022년에 간호사 야간근무 개선을 위한 모니터링 연구를 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건강검진 시행과 야근 시간 준수 등은 80% 이상 준수되었지만 야근 수당을 받은 경우가 30%도 안 되고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5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법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선 보건복지의료연대측도 이러한 간호사 처우 개선 문제에는 일단 공감하는 분위기다.간호법 폐기 이튿날인 31일 발표한 공식성명에서, 간호법 폐기는 '이 땅에 공정과 상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임상 현장을 지키는 간호인력의 처우 개선 문제는 우리 연대가 누구보다 더 공감하고, 앞장서서 찬성하며 지지한다', '진정으로 수고하고 헌신한 임상의 간호 인력들에게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우리 모두 집중할 때'라고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대한의사협회의 간호법 제정 반대 이유

대한의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등 13개 단체들의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프로젝트 팀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왜 간호법 제정을 결사 반대하는 걸까?

우선 간호법안의 내용 자체는 기존의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내용을 따로 떼어놓은 것에 불과해서 사실상 기존과 거의 똑같다. 다만, 제1조(목적)에서 의료기관 외에 '지역사회'가 추가된 것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차이점인데, 이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기관'만으로 한정됐던 간호사들의 근무영역을 '지역사회'로 확대하면 간호사가 의사없이 단독으로 병원 개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단초가 마련된다고 보고 있다. 만일 의사들의 주장대로 나중에 시행령 같은 것을 통해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으로 병원을 개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게 된다면 1차 병의원들이 경영난이나 인력난을 겪게 될 수 있다는 박명하 의협 비대위장의 말은 맞는 말이 된다. 

병원은 아닌데 간호사가 상주하면서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 있다면 질병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환자들이 간편하게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병원보다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병원의 입장에서는 내원환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수익이 줄어드는 그런 상황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기는 하다. 그런데 간호협회의 주장에 의하면 이 주장은 망상이다.

박명하 대한의협 비대위원장 발언 모습 @JTBC

간호법이 시행되면 간호사들은 병의원을 떠나 지역사회 돌봄사업에 참여하면서 의사의 지도 없이 의료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1차 의료기관들이 간호사들이 운영하는 돌봄센터와 경쟁하게 되어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고, 2차 및 3차 의료기관들은 간호사 인력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대한민국 의료는 파국을 맞게 됩니다.

-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

간호협회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간호법안에서 간호사의 역할을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 보조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문화하고 있기에 의사를 배제한 독립적인 진료 행위를 못하는데 어떻게 간호사가 개원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측은 당장 간호법안에는 없지만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집어넣음으로써 여지를 마련한 다음 이후 시행령으로 간호사 단독 개원을 추진하겠다는 음모라고 주장하는데, 모법에 모순되는 시행령의 제정은 있을 수 없기에 의사협회의 이러한 주장은 실체 없이 억측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 무리수에 가깝다.

 

간호조무사들의 간호법 제정 반대 이유

간호조무사들도 대한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문제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 간호조무사 자격 요건을 이유로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단체 관계자들의 간호법 규탄 시위 모습 @노컷뉴스

먼저 '지역사회'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확대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일자리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현행 의료법에 의하면 간호조무사는 장기요양기관 등 지역사회에서 각 법령이 규정한 인력 기준만 충족된다면 간호사 없이도 촉탁의 지도 아래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임금을 적게 줄 수 있는 간호조무사가 주로 채용되어 근무하고 있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조무사는 지역사회에서도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간호조무사만 단독으로 채용하는 일이 불법이 될 소지가 있어 간호조무사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 간호조무사들의 주장이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이 법에 의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간호조무사의 수를 1만 5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것이나 간호사를 채용하느라 간호조무사 채용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나 모두 현행 의료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 그대로이기 때문에 간호법 때문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요양병원의 입장에서 전체 간호인력 중에서 1/3만 간호사로 채우면 나머지는 간호조무사를 채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간호법 제정과 상관없이 현행과 똑같은데 굳이 간호조무사 대신 비싼 인력인 간호사를 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자격요건을 '특성화고등학교의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학력 인정되는 사람 중 국공립 간호조무사양성소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대해 학력 상한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것도 얼토당토 안 되는 주장이다. 어떤 자격면허든지 학력의 하한선을 정하지, 상한선을 정하지는 않는다.

2021년 OECD 교육지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25~34세 청년층의 대학 진학률이 69.3%로 OECD 38개 국가 중 1위다. 세계 1위라는 얘기다. 대학원 박사 출신이 환경공무원에 지원한 사람이 있더라 하는 소식도 들리는 요즘 세상인데, 특정 직종에 대해서 상한선을 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의사 분이 TV에서 특성화고등학교의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아니라면 조무사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봤는데, 대학을 다니면서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면 이중으로 돈이 들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간호조무사에 뜻이 있으면 해당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됐고, 해당 고등학교를 가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상 못 갔다면 졸업 후에 대학을 가지 않고 학원을 다니면 될 것이다. 장래희망이 간호조무사가 아니었어서 이미 대학의 다른 학과에 진학하는 등 다른 길로 들어선 이후라면 자격 따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들여 학원다니는 게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국비지원이라고 해서 훈련비 70%는 나라에서 대주는 제도도 시행중이라 개인의 부담을 많이 줄어주고 있는데 과연 이것을 차별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대학의 간호조무사학과로 진학을 해서 간호조무사가 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간호법이 생기면 대학을 못가게 된다는 의견도 있던데, 있지도 않은 간호조무사학과라는 것을 가져다가 억지를 쓰고, 학원 1년 다니고 시험봐서 합격하면 되는 걸 굳이 대학을 다니겠다는 것은 도통 이해되지 않는 얘기다.

특히 간호법안에서의 이 규정도 다른 조항들처럼 현행 의료법에서 그대로 복사-붙여넣기한 것이다. 이제까지 계속 적용되어 오는 규정인데 현재 간호조무사들 중 대부분이 대학졸업자다. 법조항이 똑같은데 기존에는 대학졸업자가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었는데 간호법 제정 이후에는 못 하게 된다는 말? 물론 고등학교 졸업자들이었는데 모두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한 후에 대학을 갈 수도 있긴 하겠는데, 그런 케이스의 비율이 과연 모든 간호조무사에 해당할 만큼일지는 의문이다.

의료법이든 간호법안이든 이 학력 제한은 대학교 졸업자가 간호조무사를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 아니라, 간호조무사를 하려면 최소 고등학교 졸업 학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최종 학력인 사람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억지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의 간호법 제정 반대 이유

요양보호사와 응급구조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데에는 나름 수긍이 가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역시나 '지역사회' 단어가 문제인데, 간호사의 업무가 지역사회까지 아우를 수 있게 된다니까 응급구조사나 요양보호사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필드를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것도 사실은 간호법안이 제정됨으로 해서 새롭게 생기는 문제라기보다, 현재 보건 의료 관련 직역 간에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았던 문제가 간호법 제정 움직임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각 직역 간에 애매하게 겹쳐지는 업무 영역들이 있는데,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정리한다고 하니까 다른 직역들 입장에서는 각자의 범위가 공식적으로 축소되거나 침탈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간호법안 제12조는 다음과 같이 간호사의 업무에 대해 규정한다.

  1.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2.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3.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 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
  4.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

이미  여러 차례의 협상과 심사를 통해 기존 초안에 있던 내용에서 애매한 것들이나 다른 직역단체의 반발을 살만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위와 같은 현재 법안의 조문을 완성하여, 정작 간호사의 업무에 관한 조문에는 특별히 다른 직역군의 역할을 침범할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이들의 불안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대한의사협회의 '지역사회'+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의구심에 뜻을 같이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번지고 말았다.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추가한 이유?

이렇게 시끄러운데 간호협회는 왜 법조문에 '지역사회'라는 말을 추가해서 이런 사달을 만들까?

앞서 말한 간호법 제정 취지에 입각해서 생각해본다면 크게 이질감은 없다.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앞으로 단순히 노인의 거동이나 살림을 돕는 것 말고도 복지시설이나 가정에서 거동이 힘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체온 측정이나 심박수 측정, 채혈과 같은 기초적인 부분에서의 의료복지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가뜩이나 의사 수도 부족하고, 전화로 하는 원격진료조차 내원 환자 진료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진료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의사들이 간호사를 대동하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왕진할리는 없고, 이러한 실정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를 받아 의사를 대신해 방문하여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의료붕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더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방문간호센터는 의료기관이 아닌 장기요양기관이다. 지금도 장기요양법에 따라서 간호사들이 개원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설이며, 수요가 있는 가정이나 시설로 간호사가 방문하여 의사의 지도에 따른 처치 행위를 한다. 간호사들의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은 의사들의 주장처럼 간호법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역할이며, 이것을 새로 제정되는 간호법에 명시하려고 한 것 뿐이라고 생각된다. 

'국민이 지역사회에서 수준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문장에 의해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비약일 수밖에 없고 아마 의사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텐데, 그렇다면 이것은 단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다른 진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건 바로 '하극상'이 아닐까 싶다. 의료계는 아무래도 의술에 관한 전문성을 기준할 수밖에 없기에 직접적인 의술을 펼치는 의사가 최상위에 위치하고, 의사의 지도 하에서 진료 보조 행위를 하도록 돼 있는 간호사가 그 아래, 또 간호사를 보조하는 간호조무사가 그 아래. 이런 식으로 계급 아닌 계급이 존재한다.

계급이라고 하니까 뭔가 되게 나쁜 것 같지만, 사실 각 직역 간의 태생적인 본연의 역할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니 특별히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제 간호법이 의료법에서 따로 떨어져나간다니까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간호사가 감히 의사와 대등한 위치가 되는 것 같은, 자신들과 맞먹으려고 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것 같다.

하나의 법으로 묶여있을 때 간호사가 의사에 종속된 하위 카테고리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반면, 별도의 법령으로 분리되면 별도의 독립된 직군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게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로는 간호법의 제정으로 인해 당장 바뀔 게 하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꼬투리 삼아 간호법의 독립을 그토록 반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해결방법?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너무 막무가내라서 어떻게 건드리기 어렵고, 다른 직역들의 불만은 간호사 외에 다른 직역들의 업무 역시 분명하게 영역을 구분지을 수 있도록 전면적인 법개정을 서둘러서, 직역들 간 서로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면 되지 않을까? 물론 의료법 전체를 다시 손봐야 해서 일이 꽤나 커진다는 생기고, 이러나 저러나 최소한 대한의사협회는 계속 반대할 것이 분명해 보여서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간호법안도 사실 현행 의료법의 간호에 해당되는 부분을 복붙해놓은 수준에 불과하여 과연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기왕 이렇게 미끄러진 김에 더 세밀하게 손을 보아서 실질적으로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법안을 다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뭐든 나름의 소신껏 하긴 하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응보다는 입에 발린 말이라도 거짓말 좀 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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